2008-FUTURE

대연동 경대앞 발란사 첫번째 매장

2008/05/17

27살에 발란사를 시작했다.

여기에서 7년 정도 있었는데, 그 시간 동안 행복한 기억이 많았던 것 같다.

그냥 그때를 생각하면서 기억나는 TMI 몇 가지 적어보자면

1.
 발란사가 있던 자리는 맨 처음 플스와 타이틀을 파는 매장이었다.
그때 골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. 그래서 망했던 것 같다.
(발란사가 생길 때에도 골목에는 발란사와 숯불나라만 있었다)

플스 매장이 망한 뒤
힙합 의류를 파는 New Jack이라는 샵이 생겼다.

가끔 가보면 사장형과 친구들이 함께 2Pac 라이브 영상을 

비디오 테이프로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.

(그 장면은 마치 내가 지금 컴튼에 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.)

좋은 물건이 있을 때면, 사장 형이 종종 연락을 주곤 했다.

갈 때마다 소위 데드스탁, 비그레이드, 백도어로 나온 것 같은 물건들을

가끔 들여오곤 했다.

그때만 해도 부산은
지금은 상상하지도 못할 물건들이
기름 유전 터지듯이 뜨문뜨문~ 나오곤 했다. ㅋ

그러던 어느 날

사장 형은 결혼과 동시에
이제 나는 문을 닫을 거라고 해서
그때 갑자기 그냥
그러면 내가 여기에서 해볼까 하고 시작한 게 발란사다.

(사장 형은 꽤 큰 사우나? 목욕탕?을 운영하는 집에
장가를 가셔서
목욕탕 1층에 스파게티집을 오픈하셨었는데
지금은 잘 지내시는지 가끔 생각이 난다)

딱 한 번 먹으러 간 적이 있다 ㅋ

2.
집주인 할아버지, 할머니께
월세를 드리러 한 달에 한 번
매장 위에 있던 주인 어르신 댁에
방문했던 기억이 난다.

계좌이체는 해본 적이 없었다.
항상 저녁 준비하고 계실 때 가져다드린 것 같다.

전부터 내려오는 룰 아닌 룰이었다 ㅋ

3.
발란사 맞은편 숯불나라 사장님, 사모님
너무 좋으신 분들이셨다.
발란사는 세콤이나 캡스가 필요 없었다.
새벽 3~4시 퇴근하시기 전까지 직접 눈으로 발란사를 감시, 보호해 주셨다.

나는 친구들이 오면
숯불나라 테라스 자리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
매장도 보곤 했다. 최적의 시스템이었다.


4.
발란사 스피커에서 시모 앤 무드슐라 음악이 크게 나올 때면
나에게 찾아와 정신병 걸릴 것 같다고
제발 소리 좀 줄이라고 하시던 맞은편 네일숍 사장님.
가끔 마주쳐도 서로 인사를 안 했던 것 같다.ㅋ



5.
발란사 바로 옆집 미스터리 아저씨
(정말 바로 옆 벽 하나를 두고 몇 년간을 사셨다)

오후 늦게 일어나셔서 문을 열고 나오시면
가벼운 인사만 했던 것 같다.

가끔은 오전에 나오셔서
음악 소리를 좀 줄여 달라고 하셨다.

그래도 꽤 많이 우리를 이해해 주셨던 것 같다.


6.
래퍼가 되겠다며 매일 놀러 오던 고삐리들이 몇 명 있었는데,
어쩔 때는 귀찮기도 하고
나는 마음속으로 설마를 외치며…
미래는 또 모르는 일이라며 잘해주기도 했다.

4~5명씩 그 좁은 발란사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면서
내 눈치를 보며 놀았는데,
손님이 오시면 자연스럽게 모두 일어나서 나가는
귀여운 아이들이었다.

바쁠 때는 심부름도 많이 시켰던 것 같다. 개 이득이다.

지금 생각하면 애들이 착했던 것 같다.
얼마 전 그때 고삐리 중 한 명이
그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결혼했다며 매장에 찾아왔었다.
얼굴을 보니 이제 고삐리가 아니고 어른이 되어 있었다. ㅋ
나름 뭉클.


7.
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

안쪽 사무실 벽에서 물이 조금씩 벽을 타고 새어 나왔다.
장마철은 나에게 먹어보지 못한 쥐약과도 같았다.

하루 종일 걸레를 손으로 짜면서
벽 구석에 수건을 깔았다.
그때 생긴 비 트라우마가 아직 있다 ㅜㅜ

8.
발란사에서는
360 티셔츠와 mix CD, 수트맨 기념품 등
(진무형에게 팔고 싶다고 졸라서 ㅋ)

부루마불, 오리지널 컷도 판매했었다. 재밌었다.

이때 부산 티셔츠도 만들기 시작했다.

(이 부산 티셔츠가 현재 사운드샵 발란사의 스타트 킥이다.)











민준이 형 CD도 꽤 많이 판매했던 것 같다.

이런 셀렉션을 만드는 일에는 내 나름대로 자부심과 프라이드가 있었다

(180g beats 와 Lovers CD는 해피로봇에서 재고를 가지고 있었다.)

.

어느 날 진복이 형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.

야! 지훈아 부루마불, 뭔 오더를 그렇게 많이 했어

다 팔 수 있겠냐?  


기쁨 반, 놀라움 반 섞인
목소리로 통화했던 기억이 난다.

나는 놀라서 주문서를 확인

총 오더 금액은 300 정도였다 ㅋㅋㅋㅋ


나는 진복이 형을 만나고 나서
진짜 멋있는 것과, 소위 말해 개짜치고 X구린 것들을 구별하는 눈이 생겼다.
형을 만나기 전보다, 마치 라섹 수술을 한 것처럼

내 기준과 시야가 훨씬 또렷해졌다. 100%



9.
갑자기 번뜩이는 나의 아이디어로
우리 막내 이모에게 뽐뿌를 넣어서
왠지 성공할 것 같다면서
발란사에 옆문을 따로 만들어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팔았었는데,

“1$ A HIP HOP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
하나에 1000원에 판매했었다.

아쉽지만, 흥행에는 실패했다 ㅋ

(진짜 아이스크림 고객은
하루에 발란사를 찾아주는 손님 중 몇 분,
지나가다 호기심에 몇 분,
그리고 근처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바지 사장처럼 맡아서 했던
제이통과 깔창이 매일 지나갈 때마다
이모가 덥다고 하나씩 줬던 기억뿐이다 ㅋ) 하하


10.

 360 Sounds / Jazzy Sport Seoul

돈이 되든 안 되든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.

Jazzy Sport Seoul (BK! 형)

갑자기 생각났는데,
범경이 형이 그때 처음으로 야마시타츠로의 단사~라고 발음했었는데 (DANCER)를
처음 들려줬었고, 듣고 너무 좋아서 놀랐던 기억 ㅋ

그게 나의 첫 시티퐆?이었던 것 같다.

다시 돌아와서,
발란사 전에 나는 그냥 360의 완전한 빅팬이었다.

처음 360 파티를 부산에서 할 때

준비하면서 마냥 신났던 것 같다.

나는 주말이면
발란사에 있던 턴테이블, 믹서를 카트에 넣고 클럽에 옮기고,
끝나면 다시 매장에 옮기고 했다 ㅋ
그렇게 돌아가면서 파티를 했었다.

처음에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,
그다음 올페에서도
몇 년을 쭉 그랬던 것 같다.
(그때 도와주셨던 매니저 누나, 감사했습니다)

그때 정말 많이 배우고,

진무형 잔소리도 많이 듣고 ㅎ




예전 360을 여름 시즌에 할 때면,

친구들이 너무 많이 와줘서

파티 다음 날 점심쯤이면
발란사 앞에 좀비들처럼 헤쳐 모여를 슬슬 하는데, 30명씩 모이곤 했다.
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모였다가

각 팀별로 다시 해산이다 ㅋ

이 사진은 360 첫 파티였던 것 같다. Plaski

진복이 형은, 내 기억에 이 날 블랙베리 분실! 사고다.

민준이 형, 살인 미소에 보조개 콤보 공격이다.
심쿵이닷!

파티 이름 고사우스

안티도트 주변,
매장하는 친구들과 형들이 쪼로록 서포트해줬었다.


해운대 노보텔에서…
건달들이 와서 다 박살낸 날
(우리한테 그런 건 아니고…)




끝ㅋ

파티 다음 날이면 거의 고정처럼 단체 회식 메뉴는 김치찜이나 국밥, 속 시원한 대구탕이었다.

조금 업그레이드하면 복국, 아니면 점례네 ㅋㅋ

한국 축구 경기가 있던 날이었나,

다 같이 갔던 점례네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.

그리고
나이키 임플로이,
남포동 가서 호떡 먹고 KFC,

빈티지 쑤시고,

수제비, 팥빙수, 팥죽 먹고,

판도 보고.
매번 똑같았지만 ㅋㅋ 재밌었다.

그때는 대구도 자주 가고,

360 덕분에 정말 많이 다녔다! ㅋ


젊다, 젊어 ㅜㅜ

(추가로, 대구에서 360 할 때 스페셜 게스트로 영킴 형이 함께해주셨는데,
얼마 지나지 않아 영킴 형의 컨디션 난조로
킬라쏭이 i30에 모시고 운전해서 서울로 돌아간 것도 기억이 난다.)

하나하나 옛날 블로그에 있던 사진들을 쥐어짜면서
주루룩 말도 안 되게 써보지만,

좋았던 하루하루를 기억해내서 너무 기쁘고 
이제 너무 지나버려서 아쉽기도 하고,

더 지워지기 전에,

그래도 진복이 형 추천 덕분에 하루라도 빨리 하나 정리해둔 것 같아서 굿

오히려 좋아.


지금까지 발란사를 서포트해 준
형, 누나, 친구, 동생들,
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
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.

늘 얘기하지만,
친구들이 도와줘서
지금까지 발란사를 할 수 있었어!!

정말 너무 고마워!